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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제목
    사회적 가치 측정의 의미와 과제
  • 등록일
    2018.11.09
  • 조회수
    3012

올 해, 최대 화두는 사회적 가치이다. 주요 언론의 사회적 가치 관련 보도기사도 2016368건에서 20181,401건으로 4배 가량 급증했다. 여기에는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 철학이 큰 힘으로 작용했다. 2014년 처음 발의됐던 사회적가치기본법이 재발의되는가 하면,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사회적 가치항목 배점도 19점에서 30점으로 높아졌다. ‘혁신, 성과, 효율성 제고를 목표로 하던 공공기관들이 다시 사회적 가치 창출이라는 본연의 목적으로 돌아간 듯 하다. 지금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사회적 가치가 강조되고 있지만, 그 실현 주체는 사회적 경제 조직은 물론, 영리 기업으로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조직의 설립 목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구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때 사회 변화를 촉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사회적 가치 측정이 보편화되어야 한다.

 

SK2015년부터 사회적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화폐가치로 측정하고 창출한 사회적 가치만큼 경제적으로 보상해 주는 사회성과 인센티브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최근 들어서는 SK 계열사와 7개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도 화폐가치로 측정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설립된 공공기관과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영리 기업,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적 기업의 속성은 각기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가치를 측정함에 있어 공통적인 기준을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면, 기술 혁신을 통해 싼 값의 상품을 생산했다고 하자. 이 때 소비자들은 기존보다 더 싼 가격으로 상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되어 편익이 증가한다. 이러한 소비자 후생이 사회적 가치가 될 수 있을까? 제품 가격의 하락에 따른 소비자 후생 증대는 시장의 가격기구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이 당연히 취해야 할 행동이기도 하다. 따라서 영리 기업에게는 이것이 사회적 가치로 인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공공재를 생산하는 공공기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공공기관은 공공재가 지닌 소비의 비경합성, 비배제성 때문에 시장의 자율에 맡길 경우, 전혀 생산되지 못 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설립된 조직이다. 공공재를 생산하는 행위 자체가 시장 실패에 따른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렴한 가격으로 공공재를 제공함으로써 발생하는 소비자 편익의 증대는 사회적 가치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조직의 설립 목적이 다른 만큼, 사회적 가치를 적용하는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조직에서 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는 목적은 조직의 존재 이유에 따라 달라진다. 공공기관은 공익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인 만큼 사회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전략 및 사업들을 개발하고, 설립 목적을 잘 이어가고 있는지 되돌아보기 위해 사회적 가치를 측정해야 한다. 영리 기업의 경우, 사회적 가치를 화폐가치로 측정할 때 경제적 가치와 합쳐진 기업의 전체 가치를 80에서 100, 100에서 120으로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기존에는 인정되지 않았던 부분이 추가적으로 더해져 기업의 가치와 평판이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은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조직의 사명이므로 사회적 가치 측정을 통해 두 가치를 선순환시키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지속가능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여 두 가치 간의 균형을 도모할 때,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상의 목적을 가지고 다양한 유형의 조직들이 사회적 가치를 측정해 나갈 때, 사회적 가치가 평가, 투자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시장 변화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사회적 가치라는 것이 주관적이기 때문에 이를 정의하기 나름이라는 비판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여러 이해관계자들, 그리고 여러 유형의 조직들과 함께 합의해 가면서 사회적 가치 측정에 필요한 구체적인 기준을 만드는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다. 물론, 과제도 있다.

 

첫째, 더 큰 사회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결과(outcome) 중심으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던 것을 넘어, 임팩트(impact)까지 측정해야 한다. 예를 들면, 지금은 장애인을 고용할 경우의 사회적 가치를 돌봄 비용의 감소로 측정한다. 하지만, 가족들이 장애인을 돌보지 않는 시간만큼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가계의 수입이 증가하는 임팩트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가계 수입의 증가가 장애인을 돌보는 부모의 정서적인 만족감을 높여 이혼율을 낮추고, 그에 따른 부가적인 사회비용도 감소시킬 수 있다. 수혜자의 객관적인 상태 개선 뿐 아니라 주관적인 인식 변화도 함께 추적하여 임팩트를 화폐화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둘째, 지금은 개별 조직을 대상으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지만, 조직의 경계를 한정짓지 말고, 여러 조직들이 함께 협력하는 프로젝트 단위로 측정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 지역 재생 프로젝트를 위해 A, B, C 기업이 협력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이 때, 지역 경제 활성화, 빈집 감소, 노인 일자리 증가, 지역 주민의 삶의 질 향상 등 프로젝트 이행에 따른 임팩트를 측정하고, 임팩트 창출에 투입된 각 기업의 기여도를 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도는 사회적 기업, 영리 기업, 공공기관 등 다양한 조직 간의 협력을 촉진시키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셋째, 시기별로 심각한 사회문제, 업종별 혹은 이해관계자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회문제가 차이날 수 있으므로 가중치를 달리 하여 사회적 가치를 측정할 필요가 있다. 1970~80년대에는 경제적 빈곤 문제가 심각했지만, 지금은 미세먼지, 지구 온난화 등에 따른 환경 문제가 심각하다. 건설업, 반도체 산업, 에너지 산업 등의 업종별로도 중요시 여기는 사회문제에 차이가 있다. 비즈니스의 결과가 안전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고, 환경 문제를 발생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업의 주요 이해관계자들도 가치관의 차이에 따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문제가 모두 다를 수 있다. 일반 소비자들은 환경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만, 직원들은 삶의 질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 때, 삶의 질 개선에 관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한다면, 일반 소비자가 수혜자인 경우와 직원들이 수혜자인 경우는 다르게 계산되어야 한다. 따라서 시기별, 업종별, 이해관계자별로 매년 사회문제를 조사하여 가중치를 달리할 필요가 있다. 더 심각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때 더 많은 사회적 가치로 인정해 줘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시장 체제였다면, 이제는 보이지 않는 마음이 함께 움직이는 자본주의 시대로 진화하고 있다. 좋은 일, 착한 일을 하는 것에도 잘 하는 일과 동등한 가치가 매겨져야 시장과 사회에 더 큰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각 조직의 특성에 맞게 사회적 가치를 정의하고, 측정하여 견고한 사회적 가치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